자의로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그 계약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 판례해설
- 2020. 11. 16.
안녕하세요. 최훈일 변호사입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석유공사가 석유비축기지 부지에 관하여 甲 지방자치단체와 30년간 무상대부계약을 갱신하여 오다가 유상대부로 전환한 후 甲 지방자치단체에 대부료를 납부하였는데, 위 유상대부계약이 금반언의 원칙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지급한 대부료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것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한국석유공사는, 甲 지방자치단체가 석유비축기지 부지를 석유 비축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한 무상으로 대부하겠다는 신뢰를 부여하였으므로 유상대부로 전환하는 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한편 甲 지방자치단체는, 한국석유공사에게 석유비축기지 부지의 매입 또는 유상사용을 촉구하였고, 무상대부계약에서도 한국석유공사가 甲 지방자치단체의 매수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대부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왔으므로 甲 지방자치단체가 한국석유공사에게 석유비축기지의 무상사용에 대한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한국석유공사가 전환된 유상대부계약에 따라 7회에 걸쳐 대부료를 지급하였음에도 유상대부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무상대부계약에서 한국석유공사가 甲 지방자치단체의 매수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대부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잡종재산을 대부하는 경우 甲 지방자치단체가 일반적으로 붙이는 조건에 불과하고, 관련 법령의 제∙개정의 취지 및 이 사건 소송에 이르게 된 경위에 비추어 보면, 甲 지방자치단체가 한국석유공사에게 석유비축기지 부지를 석유제품 비축 목적으로 사용하는 한 계속 무상으로 대부하겠다는 신의를 공여하였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반하는 유상대부계약은 정의관념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으므로, 위 유상대부계약은 무효이고, 대부계약이 갱신되지 않을 경우 원상회복의무 및 무단점유로 인한 변상금 등의 부담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한국석유공사가 유상대부계약을 체결하고 대부료를 지급한 것으로 보이므로 한국석유공사가 甲 지방자치단체에게 유상대부계약이 유효하다는 등의 신의를 제공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甲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신의를 가진 것이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甲 지방자치단체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률사무소 윤헌
변호사 최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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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0. 각급법원(제1, 2심) 판결공보 851
서울중앙지법 2020. 7. 24. 선고 2019가합538079 판결 〔부당이득반환청구의소〕: 항소
甲지방자치단체가 국고보조금으로 부지를 매입하여 석유비축기지를 건설한 후 한국석유공사와 그 부지에 관하여 무상대부계약을 체결한 이후로 약 30년간 무상대부계약을 갱신하여 오다가 유상대부로 전환하는 내용의 대부계약을 체결하였고, 이에 한국석유공사가 甲지방자치단체에 대부료를 납부하였는데, 한국석유공사가 위 대부료는 甲지방자치단체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부당이득반환을 구한 사안에서, 위 유상대부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무효이므로 甲지방자치단체는 한국석유공사로부터 지급받은 대부료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甲지방자치단체가 국고보조금으로 부지를 매입하여 석유비축기지를 건설한 후 한국석유공사와 그 부지에 관하여 무상대부계약을 체결한 이후로 약 30년간 무상대부계약을 갱신하여 오다가 유상대부로 전환하는 내용의 대부계약을 체결하였고, 이에 한국석유공사가 甲지방자치단체에 대부료를 납부하였는데, 한국석유공사가 위 대부료는 甲지방자치단체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부당이득반환을 구한 사안이다.
석유비축기지를 관리하는 전담기구로서 한국석유공사가 설립되자 甲지방자치단체는 석유비축기지의 관리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이에 한국석유공사는 석유비축기지를 전담으로 관리하기 위해 석유비축시설을 무상으로 양수받는 한편 부지 사용에 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甲지방자치단체와 무상대부계약을 체결한 점, 甲지방자치단체는 위 부지를 전액 국고보조금으로 취득하였고, 구 한국석유개발공사법(1986. 5. 12. 법률 제3837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부칙(1978. 12. 5.) 제3조 제1항, 구 지방재정법 시행령(2005. 12. 30. 대통령령 제19226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부칙(1988. 5. 7.) 제4조 제2항(1990. 11. 6. 대통령령 제13156호로 개정된 것),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 부칙(2008. 4. 18.) 제4조에 따라 한국석유공사와 위 부지를 무상으로 대부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유상대부계약 체결 이전까지 30년 이상 갱신하여 온 점, 한국석유공사는 비상사태 발생 시 甲지방자치단체가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甲지방자치단체의 석유류 절대 수요량의 30일분을 비축할 목적으로 위 부지를 점유하면서 아무런 수익 없이 비축석유를 관리하고 있는 반면 甲지방자치단체가 한국석유공사에 비축석유 관리비용을 지급한 바는 전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甲지방자치단체는 한국석유공사에 위 부지를 석유제품 비축 목적으로 사용하는 한 계속 무상으로 대부하겠다는 신의를 공여하였고, 한국석유공사의 위 신의에 반하여 체결된 유상대부계약은 정의관념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위 유상대부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무효이고, 따라서 甲지방자치단체는 한국석유공사로부터 지급받은 대부료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한 사례이다.
【참조조문】민법 제2조 제1항, 제741조, 구 한국석유개발공사법(1986. 5. 12. 법률 제3837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부칙(1978. 12. 5.) 제3조 제1항, 구 지방재정법 시행령(2005. 12. 30. 대통령령 제19226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부칙(1988. 5. 7.) 제4조 제2항(1990. 11. 6. 대통령령 제13156호로 개정된 것),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 부칙(2008. 4. 18.) 제4조,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16조, 비상대비자원 관리법 제13조, 비상대비자원 관리법 시행령 제17조 제3호
【원 고】한국석유공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율촌 담당변호사 송영은 외 1인)
【피 고】서울특별시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이후 담당변호사 송영훈)
【변론종결】2020. 6. 26.
【주 문】
1. 피고는 원고에게 5,482,539,010원 및 그중 4,644,582,760원에 대하여는 2019. 6. 28.부터, 837,956,250원에 대하여는 2020. 5. 22.부터 각 2020. 7. 24.까지는 연 5%의, 각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5,482,539,010원 및 그중 별지 1 대부료 납부 목록 ‘대부료’란 기재 각 해당 금원에 대하여는 같은 목록 ‘납부일’란 기재 각 해당 일자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 별지 2 대부료 추가 납부 목록 ‘대부료’란 기재 해당 금원에 대하여는 같은 목록 ‘납부일’란 기재 해당 일자부터 이 사건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 부본 송달일까지는 각 연 5%의, 각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 유】
1. 기초 사실
가. 원고는 석유자원의 개발, 석유의 비축, 석유유통구조의 개선에 관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석유수급의 안정을 도모함과 아울러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정부가 출자하여 설립된 법인이다.
나. 정부는 제1차 석유파동 이후인 1975. 5.경 서울시의 석유류 절대 수요량의 30일분을 서울시 인근 교외에 분산 저장하여 유사시 석유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도권 방위계획을 수립하였다. 피고는 이에 따라 국고보조금으로 구리시 (주소 생략) 외 84 필지 553,847㎡(이하 ‘이 사건 부지’라 한다)를 매입하고, 1977. 5.경부터 1982. 2.경까지 이 사건 부지상에 석유비축기지(이하 ‘구리기지’라 한다)를 건설하였다.
다. 한국석유개발공사법이 1978. 12. 5. 제정되었고, 이에 근거하여 1979. 3. 3. 원고가 설립되었다. 제정 당시 한국석유개발공사법 부칙 제3조 제1항에서는 “이 법 시행 당시 지방자치단체가 국고보조금으로 조성 중이거나 조성한 석유저장시설(저장물을 포함한다)과 그 부지는 지방재정법의 규정에 불구하고 공사에 무상으로 대부하거나 양여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두었다.
라. 피고는 1982. 5. 12. 원고와 이 사건 부지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의 시유재산 무상대부계약을 체결하였다.
제1조 대부재산의 사용목적: 석유저장시설 부지 공여 제2조 원고는 제1조 목적에 필요한 기간까지는 계속 대부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제3조 원고는 본 재산의 대부료를 무상으로 한다. |
마.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부지에 관한 무상대부계약을 갱신하여 오던 중, 2012. 10. 25. 피고는 원고에게 ‘시 재정의 확충을 위하여 공유재산 임대 시 유상대부를 원칙으로 하여 세수입 증대를 도모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무상대부하여 온 이 사건 부지를 유상대부로 전환할 계획이다’라는 내용을 통보하였다.
바. 원고는 2013. 1. 31. 피고와 이 사건 부지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의 공유재산 대부계약을 체결하였다.
사. 원고는 다시 2018. 1. 31. 피고와 이 사건 부지에 관하여 대부기간을 2018. 2. 2.부터 2023. 2. 1.까지 5년으로 하고, 대부료는 위 계약과 같이「서울특별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 조례」에서 정한 기준에 의하여 납부하기로 하는 내용의 공유재산 대부계약(이하 위 2013. 1. 31.자 공유재산 대부계약과 통틀어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제1조(목적) 석유비축시설(구리석유비축기지) 부지 대부 제2조(대부기간) 2013. 2. 2.부터 2018. 2. 1.까지(5년간) 제3조(대부료) 피고는 원고가 사용하는 재산의 대부료를 유상으로 하며, 대부료 요율 및 납기 등에 관해서는「서울특별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조례」에서 정한 기준에 의한다. 다만 대부료는 2014. 2. 2. 대부분부터 적용하여 납부한다. |
아. 원고는 이 사건 계약에 따라 피고에게 2014. 1. 16.부터 2019. 2. 27.까지 별지 1 대부료 납부 목록 ‘납부일’란 기재 각 해당 일자에 같은 목록 ‘대부료’란 기재 각 금액을 납부하였고, 별지 2 대부료 추가 납부 목록 ‘납부일’란 기재 해당 일자에 같은 목록 ‘대부료’란 기재 금액을 납부하였다.
자. 원고는 2018. 3. 5.경 국민권익위원회에 이 사건 계약이 무상대부로 변경되어야 한다는 민원을 제기하였고, 국민권익위원회는 2018. 10. 8.경 피고에게 이 사건 계약을 무상으로 변경할 것을 시정권고하였으나, 피고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차. 한편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이하 ‘공유재산법’이라 한다) 시행령 부칙(2008. 4. 18.) 제4조(이하 ‘이 사건 부칙조항’이라 한다)에서는 “제29조 제3항1)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1983년 이전에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설치한 석유제품 비축기지의 부지는「한국석유공사법」에 따라 설립된 한국석유공사가 해당 목적으로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 이를 같은 공사에 무상으로 대부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3, 5 내지 7, 18 내지 20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을 제1, 7 내지 9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의 주장
가. 원고 주장의 요지
① 이 사건 부칙조항은 이 사건 부지의 법률관계를 직접 규율하는 것으로 피고에게 무상대부 의무를 부과한 강행규정이고, 이에 반하는 이 사건 계약은 무효이다. ② 피고는 원고에게 석유 비축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한 이 사건 부지를 무상으로 대부하겠다는 신뢰를 부여하였고, 이 사건 부지를 유상대부로 전환하는 것은 피고가 원고에게 부여한 신뢰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은 금반언의 원칙 내지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으로 무효이다. ③ 이 사건 계약 중 유상대부조항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계약법’이라 한다) 제6조 제1항2)에 반하여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한 것으로서 무효이다.
따라서 피고는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로부터 지급받은 대부료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 주장의 요지
① 이 사건 부칙조항은 그 문언이나 법령의 체계에 비추어 강행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 ②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부지의 매입 또는 유상사용을 촉구하였고, 무상대부계약에서도 원고가 피고의 매수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대부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부지의 무상사용에 대한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계약은 금반언의 원칙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③ 또한 이 사건 계약 제3조의 대부료조항은 유상대부계약에 기본적으로 포함되는 전형적인 유상대부조항으로서, 특약이나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제한하는 조건이 아니므로, 지방계약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설령 원고의 주장이 이유 있더라도, 피고는 악의의 수익자가 아니므로 이를 전제로 하는 원고의 지연손해금청구 부분은 기각되어야 한다.
3. 판단
가. 이 사건 부칙조항이 강행규정인지 여부
살피건대, 이 사건 부칙조항이 ‘무상으로 대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무상으로 대부한다’ 또는 ‘무상으로 대부하여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점 및 관련 공유재산법령의 문언을 고려하면, 이 사건 부칙조항을 원고 주장과 같이 유상으로 대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취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부칙조항이 강행규정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지방계약법 위반 여부
이 사건 계약 제3조의 대부료조항은 대부계약에서의 특약이나 조건을 정한 것이 아니므로, 위 규정이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도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다. 이 사건 대부계약이 금반언의 원칙 내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
1) 관련 법리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을 말한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권리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제공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3802 판결, 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6다258148 판결 등 참조).
2) 판단
살피건대, 앞서 든 증거, 갑 제2, 4, 8, 9, 11 내지 16, 21호증, 을 제2 내지 4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과 사정들을 고려하면,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부지를 원고가 석유제품 비축 목적으로 사용하는 한 계속 무상으로 대부하겠다는 신의를 공여하였고, 원고의 위 신의에 반하여 체결된 이 사건 부지에 관한 유상대부계약은 정의관념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무효이다.
① 석유비축기지로서 구리기지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석유파동 후 정부가 유사시 서울시의 석유수급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피고에게 국고보조금 212억 원을 지원하여 이 사건 부지를 매수하고 구리기지를 건설한 후 이를 관리하도록 예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78. 12.경 석유비축기지를 관리하는 전담기구로서 원고를 설립하는 내용의 한국석유개발공사법이 제정되고 이에 원고가 설립되자, 피고로서는 예정된 구리기지의 관리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에 원고는 구리기지를 전담으로 관리하기 위해 위 법의 취지대로 석유비축시설인 구리기지에 대하여는 피고로부터 무상으로 양수받았고, 이 사건 부지에 대하여는 피고가 소유권자로 되어 있어 그 사용에 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1982년경부터 피고와 무상대부계약을 체결하였다.
② 한국석유개발공사법이 1986. 5. 12. 전부 개정되면서 한국석유개발공사법 부칙 제3조 제1항이 삭제되자, 피고는 이 사건 부지를 무상으로 대부할 근거조항이 없어 지방재정법령에 저촉되는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이 사건 부지를 유상으로 대부하거나 매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동력자원부장관은 1990. 3. 9. 피고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였다.
가. 수도권 제품비축기지는 (중략) 유사시 피고의 유류수급 안정을 위해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석유저장시설을 설치한 것으로서, 이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전문성을 요할 뿐만 아니라 관리비 등이 많이 소요하게 됨에 따라 피고에서 적정관리가 곤란, 당시 발족된 원고와 협의 무상대부계약을 체결, 원고가 관리하였던 것입니다. 나. 따라서 일부 비축기지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한국석유개발공사법의 부칙 관련 조항이 삭제되었다 하더라도 계약내용상 비축 목적에 필요한 기간까지는 계속 대부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또한 이는 유사시 피고의 유류수급 안정을 위해 설치․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석유저장 목적에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록 별도의 계약갱신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무상대부계약의 효력은 지속된다고 판단되오니 (중략) |
③ 원고와 피고 및 정부는 이 사건 부지의 무상대부 근거조항을 마련하기로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1990. 11. 6. 개정된 구 지방재정법 시행령(2005. 12. 30. 대통령령 제19226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부칙(1988. 5. 7.) 제4조 제2항(이하 ‘지방재정법 시행령 부칙조항’이라 한다)에 “제88조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피고가 1983년 이전에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설치한 석유제품 비축기지의 부지는 한국석유개발공사가 당해 목적으로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 이를 동 공사에 무상으로 대부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④ 국무조정실 주관하에 2000. 6. 16. 개최된 조정회의에서 “피고는 구리기지의 영구 무상대부에 관한 특례조항신설을 위해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행정자치부에 건의하며, 원고도 동일 내용의 개정(안)을 산업자원부에 건의한다.”라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장관은 2000. 7. 14.경 행정자치부장관에게 지방재정법 시행령 부칙조항을 “영구히 대부할 수 있다.”라고 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피고는 2000. 7. 20. 행정자치부장관에게 지방재정법 시행령 부칙조항을 “원고가 당해 목적으로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 이를 동 공사에 별도의 갱신 절차 없이 계속 대부할 수 있다.”라고 개정하는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행정자치부장관은 현행 규정으로도 석유제품기지로 계속 사용하는 한 무상사용이 가능하고, 피고도 계속 무상대부해 주겠다는 입장이라는 이유로 산업자원부장관의 영구대부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⑤ 지방재정법이 2005. 8. 4. 전부 개정되어 공유재산과 관련한 내용은 2005. 8. 4. 제정된 공유재산법에서 규정하게 되었고,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이 2008. 4. 18. 대통령령 제20772호로 개정되면서 이 사건 부칙조항이 신설되었다.
⑥ 한편 지방재정법 시행령 부칙조항 및 이 사건 부칙조항의 적용대상인 ‘피고가 1983년 이전에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설치한 석유제품 비축기지의 부지’는 이 사건 부지가 유일하다.
⑦ 피고는 이 사건 부지를 전액 국고보조금으로 취득하였다. 그리고 피고는 한국석유개발공사법 부칙 제3조 제1항, 지방재정법 시행령 부칙조항 및 이 사건 부칙조항에 따라 원고와 이 사건 부지를 무상으로 대부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이 사건 계약 체결 이전까지 30년 이상 그 계약을 갱신하여 왔다.
⑧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16조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석유비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위와 같이 마련된 석유비축시책을 원고로 하여금 시행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비상대비자원 관리법 제13조에서는 정부에게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필요한 물자를 비축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비상대비자원 관리법 시행령 제17조 제3호에서는 비축대상물자 중 하나로 석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원고는 비상사태 발생 시 피고가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피고의 석유류 절대 수요량의 30일분을 비축할 목적으로 이 사건 부지를 점유하면서 아무런 수익 없이 비축석유를 관리하고 있다. 반면 피고가 원고에게 비축석유 관리비용을 지급한 바는 전혀 없다.
⑨ 을 제1, 7, 8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이 사건 부지에 관하여 2000. 1. 24.경부터 체결된 무상대부계약에서는 ‘원고가 피고로부터 매수요구를 받고 매수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피고는 언제든지 대부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의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된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잡종재산을 대부하는 경우 구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88조 제4항에 의하여 피고가 통상적으로 붙이는 조건에 불과하다. 즉, 구 한국석유개발공사법 시행령(1986. 9. 22. 대통령령 제11964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부칙(1979. 2.
2.) 제2항에서는 “한국석유개발공사법 부칙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석유저장시설(저장물을 포함한다) 및 부지의 무상대부와 양여에 관하여는 지방재정법상 잡종재산의 무상대부와 양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이 경우에 지방재정법 시행령에서 잡종재산의 무상대부 및 양여 시에 붙이는 조건은 이를 붙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 원고와 피고 사이의 이 사건 부지에 관한 대부계약에는 위와 같은 조건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후 한국석유개발공사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위와 같은 부칙조항이 삭제되었고, 이에 피고가 이 사건 부지에 관한 대부계약에 무상대부 시 붙이는 일반적인 조건을 붙인 것일 뿐이다.
3) 원고의 무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
피고는 원고가 7회에 걸쳐 대부료를 지급하여 오고도 이 사건 계약에 대하여 무효 주장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정, 즉 피고가 2012. 10.경 유상대부를 주장하자, 원고는 이에 대하여 일관하여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대부계약이 갱신되지 않을 경우 원상회복의무 및 무단점유로 인한 변상금 등의 부담 우려가 있어 피고가 요구하는 대로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고 대부료를 지급한 것으로 보이는 점, 국민권익위원회의 피고에 대한 2018. 10. 8.자 시정권고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원고는 이 사건 소송에 이르게 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7회에 걸쳐 대부료를 지급하여 왔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에게 이 사건 계약이 유효하다는 등의 신의를 제공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피고가 이러한 신의를 가진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어,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 소결론
위와 같이 이 사건 계약은 무효이므로, 피고는 무효인 이 사건 계약에 따라 원고로부터 지급받은 대부료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
원고는 피고가 악의의 수익자임을 전제로 대부료를 지급받은 날부터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한다. 그러나 앞서 든 증거, 을 제4, 5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원고가 이 사건 계약 체결을 위한 협의 과정에서 계약조건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그러한 조건이 반영되어 이 사건 계약이 체결된 사실, 이 사건 계약이 2018. 1. 31. 한차례 갱신되었고 원고가 7년간 대부료를 계속하여 납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더하여 이 사건 부칙조항의 규정 형식을 고려할 때, 피고가 대부료를 지급받을 당시 이 사건 계약이 무효라는 사정을 알았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피고는 선의의 수익자라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선의의 수익자가 패소한 때에는 민법 제749조 제2항에 따라 그 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악의의 수익자로 보게 되고, 이 경우 ‘소를 제기한 때’란 부당이득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이 계속된 때, 즉 소장 부본이 피고에게 송달된 때를 말한다(대법원 2016. 8. 18. 선고 2016다4181 판결 등 참조). 그러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최초 대부계약에 따라 지급받은 것으로서 이 사건 소장에서 구한 금액인 4,644,582,76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인 2019. 6. 28.부터, 2018. 1. 31. 대부계약에 따라 지급받은 것으로서 이 사건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에서 추가로 구한 금액인 837,956,250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 부본 송달일인 2020. 5. 22.부터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피고는 원고의 2020. 5. 14.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은 청구취지 확장에 대한 인지액을 납부하지 아니한 채 한 부적법한 신청이므로 법원으로부터 보정명령을 받고 인지액을 납부한 이후 송달 실시한 2020. 6. 9.자 송달이 적법하다고 주장하나, 보정명령에 응하여 인지를 보정하면 그 신청은 신청 제기 당시에 소급하여 적법하게 되므로, 피고의 위 주
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대부료로 받은 부당이득의 합계 5,482,539,010원 및 그중 4,644,582,760원에 대하여는 2019. 6. 28.부터, 837,956,250원에 대하여는 2020. 5. 22.부터 각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재 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20. 7. 24.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각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허명산(재판장) 윤지상 권순현
[별 지 1] 대부료 납부 목록: 생략
[별 지 2] 대부료 추가 납부 목록: 생략
1) ③ 잡종재산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이를 무상으로 대부할 수 있다.
2.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사업을 위하여 이전하는 공익시설의 소유자가 이전에 소요되는 기간 동안 당해 시설과 직접 관련된 재산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3. 건물 등을 신축하여 기부채납하고자 하는 자가 신축기간 동안 그 부지를 사용하는 경우
2) 제6조(계약의 원칙)
① 계약은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어야 하고,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이행하여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계약담당자는 이 법 및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