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법 2016. 10. 18. 선고 2015노1181 판결 [병역법위반]: 상고
- 판결공보
- 2022. 2. 21.
2017. 1. 10. 각급법원(제1, 2심) 판결공보 47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피고인이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수령하였음에도 종교적 신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입영일부터 3일이 경과한 날까지 입영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례
【판결요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피고인이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수령하였음에도 종교적 신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입영일부터 3일이 경과한 날까지 입영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우리나라가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제18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도출할 수 없다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비추어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제인권규약에 대한 정당한 방법론적 해석으로 보기 어려운 점, 국제사회가 규범적인 차원에서도 급격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대법원도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의 범위에 양심의 자유가 포함될 여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아니한 점,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현역입영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신 대체복무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국민들 간의 실질적 형평을 기하고, 헌법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및 갈등을 완화할 국가의 의무(헌법 제10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재판과 형 집행의 현실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례.
【참조조문】 헌법 제6조 제1항, 제10조, 제19조, 제20조, 제37조 제1항, 제39조, 구 병역법 (2016. 1. 19. 법률 제1377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4조, 제62조, 제63조, 제64조, 제65조, 제71조, 구 병역법(2016. 5. 29. 법률 제1418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8조 제1항,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제18조, 형사소송법 제325조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검사
【검 사】 최성준 외 1인
【변 호 인】 변호사 오두진 외 1인
【원심판결】 광주지법 2015. 5. 12. 선고 2014고단4820 판결
【주 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1. 항소이유의 요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또 다른 헌법적 가치인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는 만큼 피고인의 행위는 헌법상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한 병역법 소정의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음에도 피고인에게 입영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2. 원심의 판단
우리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자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되는 만큼 이러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할 경우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규범조화적∙헌법합치적 해석이 필요한데, 국방의 의무만을 온전하게 확보하면서 양심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법률해석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공익근무 등 대체복무 형태의 군복무가 약 13%에 이르는 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전체 입영인원의 0.2%에 불과하여 이로 인한 군사력 저하를 논하기 어려운 점, 국제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점, 군복무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당한 사유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은 무죄에 해당한다.
3. 인정 사실 및 피고인의 양심상 결정의 의의
가. 인정 사실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1) 피고인은 2014. 10. 20. 지방병무청장으로부터 같은 해 11. 25.까지 306보충대에 입영하라는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수령하게 되자, 2014. 11. 16. 관할 병무청장에게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양심에 따라 병역에 임할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 집총을 할 수 없으며 전쟁에 관한 어떤 행위에도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3절(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 요한복음 13장 34절(서로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9절(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마가서 4장 3절(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칼을 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을 것이다) 등 하느님의 말씀이 병역을 거부하게 하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였다. 피고인의 이러한 결정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라는 취지의 글과 함께 여호와의 증인임을 증명하는 교회 측의 확인서를 제출하였다.
2) 또한 피고인은 사법경찰관의 피의자신문에서 “국민이라면 병역의무를 이행하여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위에 있는 권위에 순종하라’는 성경 구절이 있기는 하나 하느님 말씀과 상충되는 법을 따를 수 없어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술하고, 이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하느님의 법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는 죄가 없지만 인간정부의 병역법 위반으로 인하여 취해진 조치는 인정한다.”라는 취지로 답변하였다.
3) 피고인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성경을 배웠고 2009년 침례를 받음으로써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으며, 피고인의 아버지, 작은아버지가 각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복역하였고 자신의 사촌형제 2명이 최근에 같은 이유로 징역형을 복역하기도 하였다.
나. 피고인의 양심상 결정의 진지성과 절대성
양심의 자유가 보호하는 양심의 결정이란 구체적 상황에서 어떤 결정 자체를 자신을 구속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양심상의 심각한 갈등 없이는 그에 반하여 행동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앞서 본 인정 사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집총병역의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정은 일반적인 법의 명령보다 더 높은 것으로서 이러한 종교적 양심상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이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그야말로 절박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구체적 양심의 결정이므로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고, 병무청장의 현역병 입영통지서는 형사처벌을 통하여 피고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이는 양심의 자유 중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자유’ 즉, ‘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일응 볼 수 있다.
4. 이 사건의 쟁점
우리 헌법 제19조,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정하여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한편, 헌법 제39조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정하여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구체화한 법률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하 ‘이 사건 법률’이라 한다)에서 “현역입영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부터 3일 이내에 입영하지 아니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법률의 정당한 사유에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포함되는지 여부이다. 한편 종래 대법원은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정당한 사유는 질병 등 병역의무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유에 한정될 뿐 양심상의 결정을 내세워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는바(대법원 2004. 7. 15. 선고 2004도2965 전원합의체 판결, 이하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 이하에서는 국제인권규범의 해석과 변화된 국내외의 여러 사정, 병역법의 분석, 헌법 제10조에 따른 국가의 의무, 재판과 형 집행의 현실 등을 고려하여 이러한 대법원 판례의 유지 또는 변경 필요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5. 정당한 사유의 포괄 범위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법률의 정당한 사유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하는 것이 옳다.
가. 국제인권규범상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
1) 자유권규약의 국내법적 효력
우리나라가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ICCPR, 흔히 B규약 또는 자유권규약이라 한다. 이하 ‘자유권규약’이라 한다)1) 제18조는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와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의식, 행사 및 선교에 의하여 그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제1항).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를 침해하게 될 강제를 받지 아니한다(제2항).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는, 법률에 규정되고 공공의 안전, 질서, 공중보건, 도덕 또는 타인의 기본적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받을 수 있다(제3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자유권규약 선택의정서(Optional Protocol to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에 가입함으로써 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가 개인통보제도(Individual Communication)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자유권규약 위반 여부를 심사할 권한을 부여하고 그 위반사실이 인정될 경우 구제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한편 우리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자유권규약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이므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제출한 1993년, 1998년, 2003년 각 정기보고서에서 “대한민국에서 제정되는 법률에 의하여 규약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그러한 법률은 헌법위반이 될 것임”을 확약하였다. 또한 자유권규약 제18조는 특별한 입법조치 없이 우리 국민에 대하여 직접 적용되는 법률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의견이다[대법원 1999. 3. 26. 선고 96다55877 판결, 헌법재판소 2011. 8. 30. 선고 2008헌가22 등 전원재판부 결정(이하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의 정당한 사유를 해석함에 있어서 자유권규약 제18조가 일종의 특별법으로서 그 법원(法源), 즉 재판규범이 된다고 할 것이므로, 일선 법관으로서는 이 사건 법률을 적용함에 있어서 우리 헌법뿐만 아니라 자유권규약 제18조를 아울러 검토한 후 그 결론에 이르러야만 한다.
2) 자유권규약에 대한 해석과 대법원의 태도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 11. 3. 채택한 공소외 1, 공소외 2(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피고인들이다)에 대한 개인통보 사건에서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규약 제18조에 의하여 보호된다는 입장을 밝힌 이래 그 후로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대한민국 국적자에 대한 4건의 사건에서 연속적으로 개인통보결정을 인용함으로써 규약 제18조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그 보호범위에 포함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혀 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7. 12. 27. 선고된 2007도7941 판결(이하 ‘2007년 대법원 판결’이라 한다)에서 규약 제18조는 “물론 규약의 다른 어느 조문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권(right of conscientious objection)을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고, 규약의 제정 과정에서 규약 제18조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관여 국가들의 의사는 부정적이었으며, 규약 제8조 제3항 (C) 제(ⅱ)호에서 강제노역금지의 예외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있는 국가에 있어서(where conscientious objection is recognized)’ ‘병역거부자에게 요구되는 국민적 역무’를 인정하고 있는바, 위 표현은 개개 가입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및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취지에서 규약 제18조로부터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도출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도 동일한 취지이다).
3) 대법원의 태도에 대한 평가
그러나 국제인권규약에 대한 ‘살아 있는 문서이론’[The Living Instrument Doctrine, 현시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시대정신에 맞게 인권조약을 해석하여야 한다는 이론으로서, 그렇지 않고 제정 당시의 문헌에만 근거하여 해석한다면 인권의 진전을 위해 수십 년 전에 제정된 국제인권규약(국내법과 달리 그 개정이 쉽지도 않다)이 오히려 현시대 인권 증진의 발목을 부여잡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고려하여 유럽인권재판소 등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론이다]을 고려하면, 제정 연혁이 그렇다고 하여 그 조약의 보호범위가 영구불변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헌법해석이나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1항에서 보는 것처럼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하여 기본권을 도출할 수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나아가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규약 제8조 제3항 (C) 제(ⅱ)호와 규약 제18조의 관계에서 왜 규약 제18조를 해석함에 있어서 규약 제8조 제3항과 연관지어 해석할 필요가 없는지를 상세하게 서술하였고, 그 후 유럽인권재판소도 2011년 바야탄 사건에서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제4조와 제9조(자유권규약 제8조, 제18조와 동일한 내용이다)의 관계에 대한 해석에서 이러한 자유권규약위원회의 해석을 전부 받아들여 인권협약 제9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도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권규약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국제인권기관인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규약에 대한 해석은 법적 구속력(legally binding)까지는 없지만 ‘규약의 효력을 위한 중요한 자료(a major source for interpretation of the ICCPR)’로서 인정하거나 당연히 ‘상당한 설득적 권위(considerable persuasive authority)’를 보유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아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제26조, 제27조2)는 “조약은 신의성실에 좇아 지켜야 하고,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 사유로 국내법의 존재를 들 수 없다.”라고 적시하고 있는바, 국내법의 존재가 의무 이행의 거절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는데, 사법기관의 조약에 대한 소극적, 부정적 해석이 곧바로 국제조약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의무이행 거절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헌법 제6조 제1항이 국제법 존중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국제조약에 대한 이행의무의 주체는 행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4) 소결
결국 이러한 모든 점들을 고려하면, 자유권규약 제18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도출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비추어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제인권규약에 대한 정당한 방법론적 해석으로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선택의정서에 가입한 취지에도 맞지 않다. 따라서 자유권규약과 그 위원회의 해석이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법률의 정당한 사유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당한 사유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국제적 인식의 변화
1) 정당화 사유의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단의 잠정성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구체적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한 사람이 그 거부 사유로서 내세운 권리가 우리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고, 나아가 그 권리가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을 능가하는 우월한 헌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 대해서까지도 이 사건 법률조항을 적용하여 처벌하게 되면 그의 헌법상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므로 이때에는 이러한 위헌적인 상황을 배제하기 위하여 예외적으로 그에게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대법관 4인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대체복무 도입이 입법정책상 바람직한 것임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7년 대법원 판결은 “장차 여건의 변화로 말미암아 양심의 자유 침해 정도와 형벌 사이의 비례관계를 인정할 수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 조약합치적 해석 혹은 양심우호적 법적용을 통하여 병역법 제88조 제1항 소정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 적용을 배제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겠으나, 현재로서는 대체복무제도를 두지 아니하였다 하여 규약 위반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입법적 해결이 시급하다.”라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2) 국제적 환경의 변화
이러한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래 국제사회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다음과 같은 태도 변화가 있었다.
우선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앞서 본 바와 같이 2006년 공소외 1, 공소외 2 사건에서 자유권규약 제18조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석방과 구제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후로도 2010. 3. 23. 공소외 3 등 10명 사건(개인통보 1953~1603/2007), 2011. 3. 24. 공소외 4 등 100명 사건(개인통보 1642~1741/2007), 2012. 10. 25. 공소외 5 등 388명 사건(개인통보 1786/2008), 2014. 12. 8. 공소외 6 등 50명 사건(개인통보 2179/2012)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진전된 견해를 밝히면서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징병에 대해 면제를 받을 자격이 있고 이러한 권리는 강요에 의해 침해될 수 없다.”라는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다음으로 2009년 발효된 유럽연합 기본권헌장(The Charter of Fundamental Rights of the European Union)3)은 명문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였다(따라서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명문으로 인정한 국제조약이 아직까지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설시한 부분은 잘못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유엔인권위원회는 1987년, 1989년, 1993년, 1995년, 1998년과 2004년 등 여러 차례 결의를 통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과 대체복무제의 실시를 권고하였고, 유엔인권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는 2013년 결의(A/HRC/24/17)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구금이 국제인권규약상 ‘자의적 구금(Arbitrary Detention)’이라는 전제 아래 투옥자의 석방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나아가 호주, 캐나다, 프랑스 등이 최근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대한민국 국적자의 난민신청을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럽인권재판소는 2011년 바야탄 사건(Bayatyan v. Armenia, Application no. 23459/03, 2011. 7. 7. 선고되었다)에서 유럽과 그 밖의 지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과 관련된 ‘보편적 합의(General Consensus)’가 있고, “민주주의는 다수가 그들의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 소수에게 공정하고 합리적 대우를 보장하여야 하므로, 종교적 소수자에게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국가가 말하는 것처럼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간 조화와 관용을 증진하고 안정적인 다원주의를 보장한다.”라는 취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였다. 위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이 문명국가가 합의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Minimum Standard)라는 점과 관련된 규범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소결
이처럼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로 국제사회가 규범적인 차원에서도 급격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간 대법원도 정당한 사유의 범위에 양심의 자유가 포함될 여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아니한 채 일종의 시기상조론에 기대었던 만큼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시키는 것이 국제사회와 발맞춰 나가는 것이다.
다. 병역법에 정해진 병역처분 결정 사유와 비교
1) 병역법상 구체적 병역의무의 배분
모든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동등하게 처우한다고 하여 평등원칙을 준수한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헌법상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한 법률인 병역법은 실제 각 개인이 처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구체적 병역의무를 배분함으로써 의무 이행의 실질적 평등을 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병역법 제14조는 징병검사 후 신체등위, 학력, 연령 등 자질을 고려하여 현역병, 제2국민역, 면제 등의 병역처분을, 제62조는 현역병입영 대상자에 대하여 가족의 생계 등을 이유로 제2국민역 또는 보충역의 처분을, 제63조는 현역병으로 복무 중인 경우에도 가족의 생계 등을 이유로 제2국민역의 처분을, 제64조는 기형, 질병, 심신장애 등으로 병역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 수형자, 귀화자 등에 대하여 징병검사 없이 병역면제처분을, 제65조는 복무 중인 사람이 신체검사를 거쳐 병역처분 변경을 받는 경우, 제71조는 연령을 이유로 한 감면을 각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5년 병무통계연보 등에 의하면, 현역병 63만 명, 상근예비역 14,000명, 의무경찰 등 전환복무자 30,000명, 보충역 83,000명(특별한 경우 아닌 한 100단위 이하는 버림으로 계산하였다. 이하 같다. 사회복무요원4) 48,000명, 산업기능요원 17,000명, 전문연구요원 6,000명, 승선근무예비역 3,000명, 공중보건의, 공익법무관 등 특수병과 8,000명)의 인원이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3년간 현역입영 대상자 가운데 생계곤란을 이유로 제2국민역으로 처분이 변경되거나 복무기간이 단축된 사람만 매년 1,100여 명에 이르고, 전체 보충역 가운데 연령, 생계유지곤란, 수형 등을 이유로 제2국민역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매년 500여 명, 사회복무요원 가운데 제2국민역으로 변경되거나 병역이 면제된 사람이 매년 500명을 초과하고 있다.
2)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고려의 필요성
이처럼 국가는 징병검사를 통한 신체등위 뿐만 아니라, 학력, 연령, 적성, 직업, 부양가족의 생계, 귀화, 북한이탈주민 등 다양한 요소를 사전에 고려하여 구체적 병역처분을 하고 있는바, 이는 전체 병력자원에 대한 군사적 • 사회적 이용의 합목적성뿐만 아니라 병역의무의 배분에 있어서 실질적 평등을 기하고 이를 통한 사회통합을 고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서 결코 국가의 시혜적 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는 미리 병역법에 집총병역의무를 면제한 사회복무 또는 대체복무를 마련해 주지 않았는바, 앞서 본 다른 병역혜택사유들, 특히 가족의 부양, 귀화, 북한이탈주민, 체육에 있어서 국위선양 등과 비교하여 보더라도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들에 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아니한 것은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결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 사건 법률이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현역입영에서 제외하고 그 대신 대체복무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국민들 간의 실질적 형평을 기하고,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라. 법률에 대한 합헌적 해석과 헌법의 규범조화적 해석
1) 합헌적 법률해석
법률에 나타난 입법자의 태도를 검토한 결과 위헌적이라고 판단할 여지도 있지만, 해당 법률을 그와 달리 해석함으로써 입법자의 태도를 합헌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면 법원으로서는 후자의 태도를 취하여야 하는데, 이를 합헌적 법률해석이라고 한다. 즉 법원은 합헌적 법률해석을 통하여 헌법의 최고규범성 및 법질서의 통일성∙체계성을 담보하게 되므로 법률을 해석함에 있어 출발점이 된다.
이에 따라 일선 법관들은 이 사건 법률이 정당한 사유라는 일반조항을 두고 있는 만큼 위헌이라고 속단할 것이 아니라 이를 합헌적 법률로 보아 정당한 사유의 해석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두 차례 헌법재판소 결정의 논증 형식을 보더라도, 대체복무제를 두지 아니한 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 아니라는 논리일 뿐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 불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논리는 아니다). 이는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2007년 대법원 판결이 정당한 사유에 헌법적 권리 주장이 포함되는지와 관련하여 상당히 잠정적∙가변적으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그리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자유권규약 제18조는 국내에서 직접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판시하였고, 대한민국 정부도 누차에 걸쳐 국제사회에 대하여 자유권규약의 준수를 약속하였는데, 자유권규약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국제기구가 자유권규약 제18조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점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2) 규범조화적 헌법해석
또한 헌법상의 기본권과 국민의 의무 등 헌법적 가치가 상호 충돌하고 대립하는 경우에는 어느 하나의 가치만을 선택하여 나머지 가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고, 충돌하는 가치를 모두 최대한 실현시킬 수 있는 규범조화적 해석원칙을 사용하는 것은 헌법적 요청이다.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가치가 상호 충돌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의 문제도 이와 같은 규범조화적 해석의 원칙에 의하여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의 ‘정당한 사유’는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가치가 비례적으로 가장 잘 조화되고 실현될 수 있는 조화점을 찾도록 해석하여야 하는데,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배제한다면 피고인에 대한 병역의무는 완전히 이행하도록 하는 대신 피고인에게 보장된 양심의 자유는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결국 헌법적 가치들을 상호 조화적으로 해석하고 이 사건 법률을 합헌적으로 해석한다면, 정당한 사유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피고인은 병역의무의 완전한 면제나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자신의 종교의 교리상 집총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으니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고, 그러한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며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상 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국가는 그에 대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 갈등을 완화할 국가의 의무(헌법 제10조)
1) 헌법 제10조와 민주적 다수의 책임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함께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국가의 현대적 운영 원리는 민주주의이고, 유럽인권재판소는 민주주의의 특징을 다원주의(pluralism), 관용(tolerance), 그리고 포용력(broadmindedness)이라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다원적∙관용적∙포용적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책임 즉, 다수의 지배를 넘어서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통한 법치국가를 실현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과 그 제도화를 통해 사회통합을 실현할 책임은 그 사회의 민주적 다수(Democratic Majorities)에게 있다. 이러한 의무를 방기하는 다수는 억압적∙산술적 다수로서 그들이 운영하는 정치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2) 피고인의 요구와 국가의 외면
피고인은 병역의무를 기피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병역의무를 면제해 달라거나 특별한 혜택을 부여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부담하는 병역의무를 이행할 의사는 있으나 다만 그것이 집총병역의무이어서는 자신의 양심 또는 종교상의 교리와 충돌하여 곤란하니 다른 대체 역무를 부과한다면 기꺼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 다수를 대변하는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는 헌법적으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거나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는 국가에게 광범위한 입법재량이 부여되어 있으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벌로만 다스린다고 하더라도 위헌은 아니라고 하였다. 이는 헌법적 가치 실현의 책임을 입법자에게만 맡겨둔 채 사실상 사법기관의 존재 이유인 소수자에 대한 권리구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 결과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최소한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이라고 하는 무거운 형벌의 감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반면, 국가는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와 아울러 그러한 권한과 가능성까지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의무나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러한 갈등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 헌법 제10조에 따른 국가의 국민에 대한 기본권보장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고 다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도로의 설계가 잘못되어서 다수가 이용하는 한 방향만 통행이 가능하고 소수가 이용하는 다른 방향은 그 이용이 불가능한데도 국가는 도로의 잘못된 설계를 바로잡을 생각 없이 무조건 소수에게만 인내를 요구하거나 생각을 바꾸어 다수에 합류하라고만 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상 국방의무가 절대적 의무도 아니고 병역법도 병역의무를 실제 배분함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국민 개개인의 구체적 사유를 고려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많은 민주국가들이 어렵지 않게 그 대안을 마련해 주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자유권규약위원회도 수차례 개인통보사건에서 갈등관계를 해결할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존재함에도 대한민국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채 자신의 특수한 사정만을 내세우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국가의 의무 해태로 인한 불이익은 국가가 스스로 부담하여야 하는 것이지 이를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6. 이른바 반대 논거에 대한 판단
가. 반대의 논거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대체복무제의 도입과 관련하여 그 반대 논거로, 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유한 안보상황, ② 대체복무제 도입 시 발생할 병력자원의 손실문제, ③ 병역거부가 진정한 양심에 의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심사의 곤란성, ④ 사회적 여론이 비판적인 상태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경우 사회통합 저해 등을 그 사유로 들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대한 공소외 6 등 50명의 개인통보 사건(개인통보 2179/2012)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주장을 확대 적용하면 납세 및 의무교육 거부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법령하에서 피고인에게 곧바로 무죄를 선고할 경우 대체복무조차 없이 병역의무를 완전 면제를 해 주는 것이어서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어 허용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아래에서 차례로 이들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나. 안보상황의 특수성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 등으로 초래되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외교 • 안보적 상황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최근 각종의 무력 도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이제 간접적∙잠재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특유한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주관적인 사유로 병역의무의 예외를 인정하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경우 국민들 사이에 이념적인 대립을 촉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안보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설시하였다.
결국 우려하고 있는 바는 안보상황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념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있는바, 뒤에서 인정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는 것처럼 과연 현재 국민의식에 비추어 대체복무제 도입이 안보상황을 악화시킬 만큼 이념대립을 촉발시킬 것인지는 의문이 있다. 오히려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다소의 이견이 있다 하더라도 소수자의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사회통합을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고, 이러한 성숙한 민주주의 역량을 토대로 도덕적, 정치적 우위를 점함으로써 국가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다.
실제로 아르메니아(1988년부터 1994년까지 6년간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을 겪었고, 아직까지도 무장분쟁이 빈발하고 있다), 대만, 이스라엘 등이 이미 대체복무제 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 면제를 실시하고 있는바, 이와 같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안보상황이 더 안정되었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는 2004년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에 대한 입법권고를 하였고,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4인의 대법관들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으며 2007년에는 대체복무제도의 도입 논의가 시급하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그리고 국가는 2007년 9월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발표한 적이 있고, 2012년 시행된 제2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 대체복무제 도입계획을 포함시켰는바, 이러한 인식이 대한민국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다. 병력자원의 손실
현대전에 이르러서는 병력의 숫자보다 총체적 역량이나 내실이 중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는 이미 장기적으로 군의 현대화, 간부화, 정예화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군인력감축을 예정하고 있다. 나아가 이런 논거를 깊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앞서 본 것처럼 현역병으로 복무하지 아니하는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공중보건의 등 보충역이 83,000명에 이르는 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한해 600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국가는 매년 현역병 입영 대상자 가운데 생계곤란을 이유로 1,100명 이상씩 현역입영을 면제해 주거나 복무기간을 단축해 주고 있고, 보충역에 대하여도 연령, 생계유지곤란, 수형 등
을 이유로 500명 이상을 제2국민역으로 편입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한 해 600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현역병에서 제외해 주는 것이 실질적인 병력자원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국가의 항변은 납득하기 어렵다.
라. 심사의 곤란성
수많은 선진 각국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하여 대체복무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양심의 주관적 특성으로 인하여 심사의 곤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 자료를 발견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에서 그러한 예가 구체적으로 공론화된 적이 없다.
국가는 오히려 대체복무제도를 실시할 경우 병역을 기피하기 위하여 대체복무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발할 것을 우려하는 듯하나(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현역복무 기피를 위하여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개종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라고 설시하기도 하였다), 그와 관련해서도 국제적으로 보고된 선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만이 2000년경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점을 우려하여 군복무기간이 1년 10개월임에도 대체복무기간을 2년 9개월로 정하였다가 그 후 2007년 대체복무법을 도입하여 복무기간을 군복무기간과 동일하게 조정한 사례가 인정될 뿐이다.
그리고 최근 메르스 사태나 대형재난사고에서 보는 것처럼 재해복구, 재난방지, 의료, 소방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대체복무가 결코 군복무보다 편하다거나 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바, 대체복무의 내용, 강도, 그 기간 설정 등을 통하여 얼마든지 현역 복무보다 힘들거나 등가성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설계할 수 있고, 대체복무제도가 병역기피자를 양산한다는 것은 실증된 사례도 아니다.
마. 사회적 공감대의 미형성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 인권의 문제를 여론조사에 맡길 수 있는 성질은 아니라고 할 것이지만, 최근의 조사결과는 아래와 같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가 2016. 5.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실시한 설문조사(응답자 수 1,004명)에 의하면, 국민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보면서도(72%) 대체복무제 도입에는 찬성(70%)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6. 7. 8. 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응답자 수 1,297명)에 의하면, 양심적 병역거부가 양심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보는 견해가 74.3%,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지 아니한 채 병역의무만을 요구하는 것이 헌법위반이라는 견해가 63.4%, 대체복무제 도입 찬성 견해가 80.5%로 나타났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들의 의식이 최소한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찬성하고 있고, 나아가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대다수가 대체복무제도의 도입 없이 형사처벌만을 내세우는 현재 상황을 위헌이라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국민적 공감대의 부족이라는 주장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인지 그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선험적 추정에 불과한 반면에, 오히려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더해 주고 있을 뿐이다. 이미 국민들과 일선 법률가들은 성숙한 민주의식 아래 소수자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국가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신체등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유들을 근거로 병역의무에 차등을 두고 있는바, 예를 들면 예술∙체육분야에서의 문화창달과 국위선양 기여 등을 이유로 한 병역면제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반대 의견이 분출되기도 하였는바, 유독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국민적 공감대의 미흡을 이유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 이른바 양심적 납세거부와 비교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자주 자신이 내는 세금이 살인무기를 구입하는데 사용될 수 있음을 이유로 하는 양심적 납세거부 등 일반적인 시민불복종 운동과의 차별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의 나찌 치하에서 그리고 구 소련 치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였다는 이유로 투옥과 처형을 당하였음에도 지금까지 자신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위를 거부하면서 기꺼이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에, 세금납부거부는 그와 같은 강렬한 역사적 경험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 결과로 인하여 투옥과 생명의 박탈까지도 감수하여야 하는 반면에, 납세거부는 그 결과로 국가의 강제징수로 인한 재산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점에 비추어, 서로 간에 침해되는 법익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한편 자유권규약위원회도 이러한 대한민국의 주장에 대하여 “납세나 교육과 달리 병역의무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위험이 있는 행위에 관여하게 만드는 점에 비추어 보면, (거부를 주장하는) 개인이 우려하는 인명 침해에 관여하는 정도 즉 기여도에 큰 차이가 있다.”라는 취지에서 대한민국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런 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 역사와 저항의 강도, 법익침해의 정도에 있어서 다른 일반적 시민불복종 운동과 구별되는 차별성이 있다.
사.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현행 법령하에서 무죄판결의 의미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뿐만 아니라 사회복무요원 소집, 교육 소집, 병력동원 소집 및 전시근로 소집에 대하여 정해진 기일 내에 입영 또는 소집에 응하지 아니하는 경우를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한편 제65조는 현역병으로 입영한 사람에 대하여 신체검사를 거쳐 보충역 편입 또는 제2국민역 편입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지방병무청장은 현역입영 소집통지서에 따라 입영한 후 보충역 편입 처분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 다시 사회복무요원 소집통지를 할 수 있고 이에 불응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현역입영 통지에 불응한 데 대하여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 법원이 무죄판결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현역병 입영 불응에 대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판단일 뿐이어서, 추후 국가가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여 대체복무 소집통지를 한 데 대하여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부분까지 그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국가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까지 감안하여 대체복무제도를 입법화한다면, 언제든지 피고인에게 대체복무를 강제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물론 유엔인권이사회 등이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순수 민간적 성격의 징벌적이지 않은 내용으로 대체복무제도를 설계하여야 할 것이다), 피고인에 대한 무죄판결이 포괄적인 병역의무의 면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헌법 제10조에 따른 국가의 갈등완화 의무에서 본 바와 같이, 국가가 그 의무를 게을리하여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사정이 정당한 이유의 포괄 범위를 좁혀 피고인을 불이익하게 처우할 수 있는 근거로 되어서도 안 된다.
7.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재판과 형 집행의 현실
가. 재판의 현실
2000년대에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집총거부 대신 입영거부를 선택함에 따라 종래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 법원에서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는데, 일선 법원은 대체로 전과나 범행의 동기, 성행 등 형법 제51조에 따른 양형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병역법상 현역입영 면제에 해당하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판사들은 두 차례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음에도 이 사건 법률에 대하여 연이어 위헌제청신청을 하고 있고,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거쳐 유죄의견을 밝혔음에도 하급심에서 무죄판결이 끊이지 않고 있는바, 단일 법조항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이와 같은 혼란은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현행법상 유죄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취하는 법관들도 초범인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재차 위반하는 경우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의 과정 없이 예외 없이 징역 1년 6개월의 정찰제 판결을 할 뿐이고, 이와 같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에 해당하는 비교적 중대 범죄임에도 법정구속을 하는 경우가 드문데(검찰 측에서 기소 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경우는 아예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죄판결이 불가피하다는 현실 인식 아래 그나마 병역의무라도 면해주고자 하는 동정심에서 획일적 판결이 내려질 뿐 처벌법규의 사회적 규범력 확보와 범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라는 일반 형사재판의 관념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사실상 타협판결로서 국가 형벌권의 행사가 지극히 왜곡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 형 집행의 현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형 확정 후에는 교도소로 보내져 일반적인 정역의무를 부과받아야 함에도 일률적으로 미결수용소인 구치소에서 교도관의 행정 및 운영업무를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바, 이는 사실상 병역의무 대신 대체복무 또는 사회복무를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피고인으로서는 대체복무를 요구하면서 실정법을 어겼다고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국가는 대체복무는 불필요하다고 하면서 막상 유죄를 선고한 후에는 사실상의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이런 역설적 상황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굳이 유죄의 선고를 거쳐 전과자 신분으로 이런 의무를 담당하게 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으로 병역의무에 갈음하여 떳떳하게 우리의 공동체를 위하여 기여하고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함이 마땅하다.
8.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영식(재판장) 유병호 강화연
1) 1966. 12. 16. 유엔에서 채택하고, 1976. 3. 23. 발효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 7. 10. 조약 제1007호로 발효되었다.
2) 대한민국은 1977년 4월 27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을 비준했다.
Article 26 Pacta sunt servanda
Every treaty in force is binding upon the parties to it and must be performed by them in good faith.
Article 27 Internal law and observance of treaties
A party may not invoke the provisions of its internal law as justification for its failure to perform a treaty. This rule is without prejudice to article 46.
3) 2000. 12. 7. 선포되었고, 2009. 12. 1. 발효되었다.
4) 사회복지시설, 보건 • 의료, 교육, 문화, 환경안전, 행정, 예술체육요원, 국제협력요원 등으로 활동한다.